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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고액 연예인 동원 대학 축제’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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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5. 30. 18:34

이경욱 대기자 사진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최근 서울시내 대학 졸업반 학생과 만났다. 그는 학교 축제에 대해 "연예인을 직접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으쓱해 했다. 연예인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운데, 가까이서 연예인의 노래와 춤을 즐길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고 했다. 친구와 통화하더니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축제 마지막 날 연예인 행사가 곧 시작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서슬 퍼렇던 군사독재 정권 시절 대학에 다녔다. 그 때에도 축제는 있었다. 타 대학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와 함께 교정 곳곳을 거닐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호화찬란하지는 않았고 연예인 공연의 우렁찬 굉음은 들리지 않았으나 청사초롱이 길 안내를 하던 소박한 축제의 향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축제 기간 웬일인지 보이지 않는 대학 선배를 찾아 자취방으로 갔다. 춘천 출신의 그 선배는 쓸쓸히 방바닥에 밥과 김치를 놓고 저녁을 먹고 있었다. 축제의 즐거움을 만끽했어야 할 그였는데 그렇지 못했다. 마음이 아팠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연수 시절 기억이 새롭다. 우리와 같은 축제 기간 대학은 하루 날을 잡아 '커뮤니티 데이' 행사를 진행하면서 주민과 소통하고 그 과정에서 모인 기금을 불우이웃에 전달했다. 대학 앞 4차선 도로에서 학생과 주민이 한 데 어울려 쉼의 시간을 갖는 모습이 불꽃놀이와 굉음으로 뒤범벅된 우리의 대학축제 모습과 겹쳐 마음이 편치 않다.

요즘 대학들은 5월 축제 기간 앞을 다퉈 '몸값이 제법 비싼' 연예인들을 섭외해 공연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가수 싸이는 이달 한 달 대학 축제 10여 곳을 휘젓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가장 인기 있는 섭외 대상 연예인이란다. 대학 축제란 게 학업에 지친 학생들이 모처럼 쉼의 시간을 갖고 자신이 속한 대학 공동체의 면모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그런 축제가 이제는 인기 연예인의 독무대를 지켜보는 행사로 전락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축제 때 얼마나 유명한 연예인을 동원하는 가에 대학 평판이 달려 있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이니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이 수억 원의 돈을 들여 정상급 연예인들을 불러 떠들썩하게 축제를 벌이는 것은 분명한 '남용'이다. 서로 모셔가려는 인기 연예인을 초청하는 게 학생회의 능력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확실한 '오용'이다. 지금도 여전히 수십 년 전 자취방 방바닥에서 밥과 김치로 끼니를 때우며 생활고에 시달리던 선배처럼 어렵사리 학업을 이어가는 대학생들이 많다. 축제가 마무리되고 모든 게 썰물처럼 빠져 나간 이후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대학생들도 적지 않다.

대학 초청이 아니더라도 돈을 무척 많이 버는 연예인들에게 일회성 지출을 할 게 아니라 장학금 지급을 늘리던지 무료 급식을 하던지 그래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대학가의 모습이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았는지 모를 일이다. 학생들이 학교와 손잡고 얼마든지 멋들어지고 품위 있고 깊은 여운을 남기며 의미 있는 축제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해법이 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축제에 초청하고자 하는 연예인은 전적으로 재능기부를 하도록 해보자. 대학 동문이면 섭외가 훨씬 쉬울 것이다. 동문이 아니라면 유명 연예인에게 재능기부를 부탁하자. 거절하면 평판이 나빠질 것을 우려할 것이다. 대학은 우리 사회에서 순수함이 그래도 가장 진하게 남아 있는 곳 아닌가. 그 순수성을 속히 회복하는 우리 대학이 됐으면 좋겠다. 연예인 초청을 포기하고 남은 예산을 대학 구성원들의 몫으로 돌려야 마땅하다. 우리 대학은 언제쯤 이런 남용과 오용에서 벗어나 '정상'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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