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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칼럼] 대통령 거부권 제한 법안 발의는 입법 폭주의 결정판

[김이석 칼럼] 대통령 거부권 제한 법안 발의는 입법 폭주의 결정판

기사승인 2023. 05. 2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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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논설심의실장
국회는 모든 이들이 따라야 하는 '강제적인' 법을 만드는 입법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법이 한번 만들어지면, 그 법의 입법에 반대한 이들도 따라야 한다. 그래서 다수의 의견과 다른 이견(異見)까지 충분한 검토를 거친 후 신중하게 법을 만들어야 한다. 특정한 법안이 다수결을 획득했다고 해서 '법다운 법'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보편성 등 법다운 법이 지녀야할 성격은 민경국, 《자유주의의 도덕관과 법사상》 참고)

투표, 적자재정 지출 등 공공의 문제에 대한 선택을 경제학적으로 다루는 공공선택학(Public Choice)도 정치, 경제, 철학, 법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시각을 제공하는데, 이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의 거부권은 다수결 입법에 내재되는 '강제적 요소'를 최소화하면서도 의사결정의 비용을 줄이기 위한 장치다.

사실 지금까지 거대야당 더불어민주당이 입법 폭주를 일삼는다고 크게 비판받았던 것은 바로 위원장이 여당 국민의힘인 소속인 법사위원회를 거치지 않은 채 법안을 본회의에 직접 회부했기 때문이다. 상원과 하원 양원을 두면, 특히 상원과 하원이 서로 다른 정당소속 의원들이 다수파일 때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 입법이 좀 더 신중해질 수 있다.

그래서 양원제도 대통령의 거부권처럼 강제적 요소를 줄인다. 단원제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미국의 양원제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 다수파가 아니라 소수파가 위원장을 맡는 법사위원회의 심의를 법안이 반드시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절차를 완전히 무시했기에 더불어민주당은 개인의 강제 받지 않을 자유를 존중하는 정당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처럼 법사위를 건너뛰고 본회의에 바로 회부된 법안을 입법하곤 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소수파 여당의 반대 논의를 강제로 생략한 채 통과시킨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 대해 잇달아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는 공공선택학의 입장에서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 소속 의원들이 주축이 되어 하위법인 법률을 통해 최고상위법인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입법거부권을 제한하겠다고 나섰다. 

이런 발상 자체가 입법폭주의 결정판이 아닐 수 없다. 판사 출신으로 감사원장을 지낸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도 같은 취지로 비판하고 "오로지 정치적 셈법에 따라 국회의 입법권을 한없이 가벼이 여기는 민주당의 입법폭주는 반드시 국민의 준엄한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이 적중해야 할 텐데... 아무튼 현재의 우리 국회를 보면 왜 하이에크가 입법의회와 예산의회를 분리하자는 이야기를 하는지 짐작이 된다.

가상적 예를 생각해보자. 아이들 각자가 3달러씩 돈을 쓸 수 있는데 크레파스를 살 것인지 주스를 살 것인지를 투표로 결정한다고 해보자. 크레파스를 원하는 사람 수를 세어 보고 그 다음엔 주스를 원하는 사람들의 수를 센 다음 만약에 주스를 원하는 아이들이 많으면 모두가 주스를 산다. 크레파스를 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물론 크레파스를 산다. 

얼핏 보면 단순다수결 규칙이 공평한 것 같다. 그러나 투표가 끝나는 순간,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을 강요당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지불하는 비용을 공공선택학파는 '외부 비용'이라고 부른다(강위석 외, 《자유주의로의 초대》 300쪽). 사실 이 경우에는 각자가 원하는 것을 사도록 허용하는 게 최선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무도 강요당하지 않는다.

공공선택학파는 외부비용의 최소화 측면에서는 만장일치가 최선이라고 본다. 그러나 만장일치에서는 단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의결에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가중다수결이고 이런 취지를 살린 제도가 바로 대통령의 거부권이다. 이처럼 헌법이 마련한 다수의 폭정을 방지하기 위한 절차를 하위법인 법률로 제한하겠다고 한다. 정말 입법폭주의 결정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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