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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연 칼럼] 전세는 죄가 없다

[정수연 칼럼] 전세는 죄가 없다

기사승인 2023. 05. 2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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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연 제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집사줄 부유한 부모는 없지만 열심히 노력하여 번듯한 직장을 얻은 개룡이(개천에서 난 용)들이 집을 마련하는 길은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이었다. 그들은 쾌적한 새 아파트는 전세를 주고, 자신은 오래된 빌라에 살며 외식 한번, 새옷 한 벌을 못 사고 절약하여 자산을 마련했다.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가로 이어지는 이 자산형성방법을 우리는 주거상향, 주거사다리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이제 수 백채를 가진 빌라왕들 때문에 미래의 개룡이들이 전세라는 주거사다리를 잃게 생겼다. 

전세사기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이 운명을 달리하면서 2022년 9월부터 이슈가 되었지만, 사기가 아닐지라도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집주인들은 늘어났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올해 4개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사고금액은 1조 830억원인데, 이는 작년 한해 보증사고금액인 1조 1천726억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4개월만에 작년 한해 보증사고금액을 따라잡은 것이다. 이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가? 사실상 전 정부 규제일변도 부동산정책 때문이다. 

전 정부시절 시장을 자극한 부동산정책은 많은 젊은이들을 영끌의 대열로 이끌었다. 규제강화로 대출이 막히니 모자란 돈은 전세로 메꿨다. 부동산시장 주체의 심리를 자극할 정도로 강한 규제는 늘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양도세 면제받고 싶으면 자기집에 거주하라는 양도세규제는 전셋집들을 자가주택으로 전환시켰다. 대출이 별로 없는 전셋집들은 그렇게 집주인들의 자가주택이 되어 전세공급을 줄였다. 남은 집들은 개룡이들의 영끌주택이었다. 이제 이자율은 급상승하고, 집값도 전세값도 동반하락하면서 시장은 아비규환상태가 되었다. 그러니 집주인이나 세입자나 모두 규제일변도 부동산정책의 희생자일 뿐이다. 

◇ 보증금 미반환 사고와 전세사기 구분해야 

그러나 모든 집주인들이 다 전세사기범은 아닐진대, 사회분위기는 다시금 전 정부에서 유행하던 '집가진 죄인' 프레임을 소환하고 있다. '보증금 미반환 사고'와 '전세사기는 구별해야한다. 사기인가 아닌가는 '의도했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그러나 지금은 '전세사기'라는 키워드로 선한 임대인까지 엮여들어가고 있다. 모든 집주인들이 전세를 놓으며 세입자의 돈을 편취해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음에도 말이다.  

전세사기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최근 대규모로 연달아 발생해서 그렇지, 사실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의 투명성 수준을 생각하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빌라 실제 가치보다 더 많은 과다대출을 했다는 감정평가사 이야기도, 세입자에게 근저당설정 순위를 속인 중개사 이야기도 뉴스거리로 심심치 않게 등장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세소멸론이 등장하고 있다. 

◇ 전세를 대신할 주거사다리 제안해야

전세 외에 다른 주거상향 사다리를 마련하지 않은 채 전세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월세에서 자가로 가는 징검다리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다. 월세에 갇힌 청년들은 영원히 월세소작농이 될것이다. 전세를 없애기 보다는 근본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대안없는 전세소멸은 우리 사회의 계층갈등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 중산층이 될 희망이 없는 사회는 계층갈등을 연료삼아 불타버릴지도 모른다. 

개룡이들은 왜 전세를 끼고 집을 사야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갚을 능력이 있어도 주택대출은 LTV 50%에 막혀있다. DSR은 월급소득을 기준하니 연봉이 높지 않으면 그나마 50%대출도 실행되기 어렵다. 갚을 자신은 있는데 공공금융에서 돈을 빌릴 수 없으니 가는 곳은 사금융이다. 전세의 본질은 사실 사금융이다. 국민을 믿지 못하는 지나친 규제와 신용이 있어도 대출로 집사면 투기로 간주하는 우리사회의 '유죄추정의 원칙'이 국민들을 사금융으로 밀어내온 것이다. 

◇집 가진자가 죄인이라는 편견이 우리사회 지배

전세소멸론을 말하는 이들은 결국, 부자부모를 두지 못한 개룡이들이 자금을 융통할 길을 막아 영원히 월세소작농이 되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집을 좀더 수월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지 못하면 청년들의 자산형성은 요원하다. '중산층을 두텁게'만드는 것은 국가의 허리를 튼튼히 하는 것이다. 전세 소멸론을 이야기 하는 모든 이들은 월세에서 자가로 이동하는 그 중간의 징검다리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전세는 죄가 없다. 규제일변도 부동산정책, 그리고 부동산시장의 불투명성을 해소할 장치들을 그 오랜 기간동안 마련하지 못한 기성세대들이 죄인이다. 전세를 대신할 주거상향의 징검다리를 마련하지도 못한 채 전세를 없앤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이제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논해야 한다. 그리고 그 초점은 주거사다리의 대안, 사금융의 공공금융으로의 전환방법, 부동산시장의 투명성강화에 맞춰져야할 것이다.

다행히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24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처리했고 25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전세사기 특별법은 피해자들의 신속한 구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발생한 피해자'의 구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발생할 피해자'들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불법의 영역에 있는 전세사기에 대해서는 처벌강화 등 엄격하게 대처하되, 합법의 영역에 있는 보증금 미(未)반환사고에 대해서는 보증금반환 목적 대출을 DSR규제에서 해제하여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고자 하는 선의의 임대인을 구제하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살던 전셋집을 구매하고 싶지 않은 세입자들이 그 집을 억지로 구매하지 않을 수 있다. 경매로 넘어갈까 두려워 억지구매를 해야하는 세입자, 경매시 최우선변제금 10년 무이자 대출조차 세입자에게는 빚을 지게 하는 것이라는 비판에 귀기울여야 할 때다. 보증금반환 목적 대출을 DSR규제에서 풀어 집주인이 기꺼이 그 빚을 감당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반기 닥칠 수도 있는 부동산금융시장 발 신용경색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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