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대중가요의 아리랑] <51> 이별의 정한과 상처 ‘울어라 열풍아’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global.asiatoday.co.kr/kn/view.php?key=20230820010009683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3. 08. 20. 17:48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못 견디게 괴로워도 울지 못하고/ 가는 님을 웃음으로 보내는 마음/ 그 누가 알아 주나 기맥힌 내 사랑을/ 울어라 열풍아 밤이 새도록// 님을 보낸 아쉬움에 흐느끼면서/ 하염없이 헤매도는 서러운 발길/ 내 가슴에 이 상처를 그 누가 달래주랴/ 울어라 열풍아 밤이 새도록' '울어라 열풍아'는 1년 전인 1964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동백 아가씨'에 이어 인기의 열풍을 몰아간 불후의 명곡이었다.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의 '울어라 열풍아'는 1965년 4월 개봉한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시대극 영화 '열풍'의 주제가였다.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던 숱한 사람들은 '못 견디게 괴로워도 울지 못하는' 자신의 심정을 대변한 노랫말에 가슴 저리는 공감을 토로하며 이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내우외환이 잦았던 우리 민족사에서 곡절 많은 삶을 이어오던 서민 대중들이야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래서 '울어라 열풍아'는 크고 작은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주제가이면서 그 아픔을 어루만져 준 치유의 노래이기도 했다. '열풍'이야말로 내 속울음을 대신할 곡비(哭婢)였기 때문이다. 곡진한 가사와 애절한 가락이 가슴속 상처들을 위무했을 것이다. 그렇다. 이미자의 노래는 아무리 들어도, 아무리 불러도, 그리고 아무리 흘려도, 마르지 않을 한국인의 정서적인 눈물강일지도 모른다.

가요평론가인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는 한국가요사를 정리한 저서 '번지없는 주막'에서 "이미자의 노래들은 아무리 부르고 불러도 결코 바닥이 마르지 않는 강물이었다"고 했다. 따라서 그 강물에 기대고 의지하며 외로움과 괴로움을 달래고 위로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파도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우리 겨레의 오랜 이별의 정서와도 맞닿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버리고 가시리잇고'로 시작하는 고려가요 '가시리'와 '대동강 물은 언제나 마를 것인가/ 해마다 이별의 눈물을 보태는 것을(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로 끝나는 고려 문인 정지상의 한시 '送人(송인)'은 이별의 아픔을 애틋하게 표현하면서도 자기희생과 절제된 감성을 담고 있다. 이른바 이별에 관한 우리 민족 고유의 '승화된 정한(情恨)'이다.

'사랑은 얻어도 고통이요, 잃어도 고통(愛情得了痛苦 愛情失了痛苦)'이라는 옛 시인의 표현이 있다. 계절이 왔다가 가고 꽃이 피었다가 지듯이, 만남과 이별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울어라 열풍아'는 대중가요의 가사와 가락을 통한 이별의 서러움과 쓰라림을 극복하려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서적 변주이기도 했다.

이별의 정한은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란 조선시대 명기(名妓) 황진이의 시조는 물론 민요 아리랑과 판소리의 이별 장면에도 스며있다. 나아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란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에서 극치를 이뤘다. 만해 한용운은 '님은 갔지만 님을 보내지 아니한' 시 '님의 침묵'에서 오히려 견성성불(見性成佛)에 이르는 이별의 미학을 창출했다.

현대의 가곡 '그 집앞'과 '바위고개'도 그렇다. 만남과 이별의 슬픔을 초극하려는 순화된 정서의 표현이다. 속칭 '이별범죄'가 횡행하는 오늘날의 싸구려 만남과 이별에서야 무슨 승화된 정한이 있겠는가. 그래도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별리의 상처를 지닌 채 오늘밤 아쉬움과 서러움과 외로움과 괴로움에 홀로 잠 못 이루는 사람이 있다면 '울어라 열풍아'가 그것을 달래주는 선풍(扇風)이 되기를 기원한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