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새해를 맞아 중동에서의 전쟁 흐름을 주시하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점들을 몇 가지 짚어보았다.
첫째, 현실감각의 중요성이다. 그간 이스라엘은 성공에 도취해 있었다. 군사와 외교적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압박과 고립화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모두 승리했고 22개 아랍국가 중 6개국과 점진적으로 국교를 수립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한 중동평화과정은 사실상 중단되고 자연스럽게 잊혀갔다. 정착촌은 확대되고 방벽 넘어 팔레스타인의 역량은 경시되었다. 이스라엘이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공격으로 입은 피해는 과거에 안주해 현실감각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국력은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국력의 요소는 여러 종류가 있고 팔레스타인은 그동안 비대칭 역량을 축적했다. 전략적 감각은 기습공격의 타이밍과 여론전에서 성과로 나타나 이스라엘의 아랍국가 접근을 저지하고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 문제에 주목하도록 했다. 수천 발의 로켓포로 목표물을 타격하면서 신속히 인질을 확보하는 것은 상당한 전술 능력으로 볼 수 있다. 상대의 역량 변화를 읽지 못하면 군사와 외교 두 개의 정책수단을 효율적으로 구사할 수 없다.
셋째, 전쟁에서 의지의 중요성이다. 봉쇄된 가자 지역은 비정상적 사회 공간으로 비인도적 생활환경이다. 민간인 방패 또는 총력전이 된 하마스의 고육지책은 이 같은 희망 없는 상황이 만든 의지에서 나왔다. 그러나 중동전의 확전은 아랍과 이슬람 국가를 끌어들이게 되고 한국을 포함한 세계경제에 고통을 준다. 과거 1970년대와 1980년대 겪었던 석유 위기를 기억하면 동감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하마스의 유도 전략이 나올 것이다.
넷째, 전쟁에서 지원세력을 확실히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주의 정치학자 한스 모겐소의 말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강고한 안보 제공과 함께 상당수 국가의 지지를 받아왔다. 《쉰들러 리스트》처럼 이스라엘에 대한 공감도 작용했다. 그러나 21세기는 미국의 영향력 약화와 브릭스와 같은 신흥세력의 부상으로 국제사회의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적 이해관계가 복잡해졌다. 여론의 영향력도 커졌다. 미국은 1980년 이란-이라크 전(戰)에서 이란 이슬람 혁명정부에 TOW 대전차미사일을 공급했다. 이란-콘트라 공작을 통한 미국인 인질 석방이 목적이었고 전쟁은 8년간의 지구전이 되었다. 현재는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고 오일 머니 협력을 위해 아랍이 필요하다. 따라서 모든 국가의 최종적 안보는 자주국방의 힘과 의지가 좌우한다.
1948년 5월부터 1949년 3월까지 계속된 이스라엘 건국 전쟁은 외교와 군사적으로 면밀히 준비된 이스라엘의 승리였다. 초대 대통령 와이츠만은 자서전 《시행과 착오》에서 자신이 1917년 밸푸어 선언문 초안 작성과정에 깊이 개입한 사실을 회고했다. 1918년 6월에는 아라비아 로렌스와 파이살 초대 아랍국왕을 만나 유대 국가 건설을 사전 협의했다. 그리고 1948년 1월에는 체코와 무기계약을 맺고 전투기와 중무기를 수입해 전쟁에 대비했다. 그러나 2000년 만에 이루어진 건국처럼 21세기 세계와 아랍도 변화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새로운 환경을 맞게 되었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 과거의 기준으로 상대를 경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1982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 당시 〈이코노미스트〉지는 전쟁의 피곤함 중에 잠시 앉아 쉬고 있는 이스라엘 병사를 커버 사진으로 싣고 "이스라엘이 어린아이였을 때 내가 그를 사랑하였노라"는 구약 《호세아》 구절을 인용해 넣었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그러나 과거 역사에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고 팔레스타인 민족의 통치하에 고통받았다. 이후 고난의 디아스포라와 홀로코스트는 인류 역사에 남은 참극이었다.
하마스의 기습공격과 민간인 테러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많은 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희생당했다. 그러나 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그래서는 폭력과 희생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유엔헌장과 국제법에 따른 외교로 근본적 문제를 다루면서 중동평화과정을 부활하는 것이 중동과 세계를 평화와 안전의 길로 이끈다. 유엔의 지도력과 중개 국가들의 평화외교 활동을 기대하는 이유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