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칼럼] 친구 & 어 퓨 굿 맨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global.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704010002572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7. 04. 13:52

이황석 문화평론가
영화 '친구'와 '어 퓨 굿 맨'은 묘하게 닮았다. 두 작품은 명대사로도 유명하다. 그중 하나씩만 소개하면, '친구'에서 동수(장동건)가 칼을 맞으며 "많이 묵었다 아니가 고만해라"와 '어 퓨 굿 맨'에서 악역인 제섭 대령(잭 니콜슨)이 주인공 법무관 캐피 중위(톰 크루즈)에게 "진실을 감당할 수 있겠나"라며 겁박하는 장면을 꼽을 수 있겠다. 그 외에도 이 두 영화 모두 특수한 조직문화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 퓨 굿 맨'은 소수정예를 의미한다. 상륙 및 기동작전에서 선봉을 맡고 있는 미 해병대의 구호다. 이 짧은 모토엔 해병대의 자부심이 그대로 담겨 있는데, 정예 요원들로 가장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소속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로써 해병대 특유의 명예 의식은 명령을 부여받은 해병들이 기꺼이 사선에 서게 하는 동력이 되어왔다.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하는 군대 체계의 목적은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함이다. 군이 반드시 전투에 승리해야 하는 이유는 국가의 위임을 받고 국민의 안전과 국토를 수호함에 있다.

그런데 영화 '어 퓨 굿 맨'이 개봉한 1992년 겨울은,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음에도, 대선에서 소위 삼당합당이라는 정치적 이벤트로 그 잔존세력이 권력을 연장할 수 있게 된 시점이었다. 물론 그 이후에 결과적으로 반전이 있었으나, 당시엔 '하나회'라는 소수 군인집단의 권력욕을 잠재우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던 시절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미국에서 만든 영화는 가히 문화충격에 가까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 퓨 굿 맨'은 부당한 명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 역시 직무 유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곤 곧바로 현실로 돌아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객들이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이 아니라 환영에 불과했다.

'코드 레드, 훈련에 부진한 병사를 집단 린치하라'는 명령으로 인해 우발적으로 사망자가 발생한다. 그러나 수뇌부는 진실을 은폐한다. 명령에 복종해 코드 레드를 수행한 두 명의 병사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게 되고, 명령권자인 제섭 대령은 어떠한 문책도 당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비리를 알게 된 법무관 캐피 중위는, 명예를 되찾고자 하는 두 명의 해병, 도슨 일병과 다우니 이병의 변호를 맡게 된다. 고군분투 끝에 마침내 진실은 밝혀지고 무죄를 선고받지만, 부당한 명령에 복종한 부분에 대해선 유죄를 선고받고 두 해병은 불명예 제대하게 된다.

유죄가 선고된 부분에 대해서 항변하는 다우니 이병을 말리며, 도슨 일병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약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 부당한 명령에 복종한 사실에 대해 유죄를 받아들인 것이다. 항변할 것이 많아 보이는 상황임에도 그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어디 쉬운 일인가. 영화는 군인으로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만약 그 명령이 부당한 것이라면 거절할 용기가 있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었다. 어찌 1992년의 대한민국 관객들에게 판타지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어 퓨 굿 맨'은 진정한 군인의 소명이 무엇인지 분명한 어조로 각인케 하였다. 군대의 목적은 국가의 위임을 받아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국토를 수호하는 데 있다면, 국가는 국민으로 범주화된 모든 약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한다.

글의 서두에 '친구'와 '어 퓨 굿 맨'의 닮은 점을 언급했다. 두 영화 모두 특별한 조직에 관한 영화다. 더불어 의리와 동료애라는 조직문화에 기생하는 배신과 은폐의 정서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또한 하이라이트 신에서 법정 영화의 성격을 띤다. 법정 영화의 매력은 진실 공방에서 오가는 논리의 전쟁에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두 작품 다 거짓 논리가 깨지는 지점에서, 범죄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진범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마침내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어 퓨 굿 맨'의 제섭 대령은 절대 권력자로서 자신의 비위를 숨기고자 한 파렴치한이지만 한편으론 군인으로서 명예를 지킬 줄 알았던 자다. 자기모순에 빠진 그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은 사실을 말함으로써 자존심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피의자 도슨 일병이 부당한 명령을 거절하지 못해 불명예제대를 하는 수모를 겪게 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로써 명예를 회복하는 것과 유사한 구조를 이룬다.

한편 영화 '친구' 역시 어린 시절 동무였던, 상대 조폭의 부두목 동수를 살인 교사했던 조직폭력배 준석(유오성)이 혐의를 인정한 이유가 흥미롭다. 그는 법망을 피해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임에도 재판 과정에서 살인을 교사한 범행 일체를 시인한다. 그 이유를 말하는 준석의 명대사. "쪽팔려서" 절묘하게 제섭 대령과 준석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런데 어디 약자를 괴롭히는 조폭과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군대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그 방증으로 부당한 외압에 맞서, 고인이 된 채상병과 유가족의 편에 서서 진실을 말함으로써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을 대한민국의 군은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