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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의 문화路] 한국화 거장 김선두가 그려낸 ‘삶의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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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4. 07. 30. 15:55

학고재에서 4년만에 개인전..."낡은 방식으로 새롭게 이야기"
김선두, On the Way in Midnight, 2024
김선두의 '밤길'. /학고재
보름달이 두둥실 떠 있는 푸른빛의 밤하늘. 그 아래 산길에는 홀로 걷는 사람이 조그맣게 보인다. 단순한 몇 개의 선으로 표현됐지만 밤의 감흥에 세련미가 더해진 이 작품은 한국화 거장 김선두의 '밤길'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학고재 갤러리에서 김선두 개인전 '푸르른 날'이 열리고 있다. 전시 개막을 앞두고 학고재에서 만난 작가는 이 작품에 관해 "달을 통해 삶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향이 전라남도 장흥인데 전기가 하나도 없는 시골이었어요. 밤에 다니다 보면 달이 떠 있는 날은 달이 저를 따라옵니다. 어떨 때는 산길이 무지하게 무서운데 달이 떠 있는 날은 그나마 걸어갈 만했어요. 달을 통해 삶의 희망, 위안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김선두, 아름다운 시절-김수영
김선두의 '아름다운 시절-김수영'. /학고재
전시장 입구 쪽에는 시인 김수영의 젊은 시절을 담은 초상화가 걸렸다. 작품 상단에는 시인의 초상화가, 하단에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알파벳이 새겨져 있다. 그 아래 김수영의 '이 한국문학사'가 적혀 있으며, 글씨는 덧써져 마치 연기처럼 보인다. 김선두의 '아름다운 시절' 연작 중 하나로, 작가는 이 시리즈를 통해 유한한 시간 속 찬란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번 전시 주제는 '삶의 절정'이다. 작가는 꽃이 피는 찰나, 폭죽이 터지는 순간, 성취의 절정을 포착함과 동시에 그 이후의 감정과 모습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전시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은 폭죽이 터지는 순간의 화려함을 할미꽃, 찔레꽃, 등꽃 등으로 형상화한 '싱그러운 폭죽'이다. 세로 2m, 가로 8m에 달하는 대작으로 갤러리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작품이다.

김선두
자신의 작품 '싱그러운 폭죽' 앞에 선 김선두 작가. /사진=전혜원 기자
"2003년에 이청준 선생님께 세배 인사드리러 갔다가 그곳에 있는 할미꽃을 봤어요. 할미꽃이라고 하면 뭔가 슬프고 힘이 없는 꽃 같았는데, 굉장한 에너지를 느꼈어요. 마치 대지에서 쏘아올린 폭죽 같았습니다. '싱그러운 폭죽'은 거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에요. 이 그림을 통해 절정 뒤의 허무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김선두는 장지에 분채를 여러 번 쌓아올리는 기법을 사용해 색을 우려낸다. 장지는 촘촘하고 두껍기 때문에 수십 차례 채색해도 색을 포용할 수 있다. 물감을 머금은 장지에는 색이 투명하고 짙게 발색된다. 채색을 얹어 지우고 더하는 과정을 수십 차례 반복해 작품에 깊이감을 더한다.

자연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김선두는 새와 들풀 등 자연의 대상을 그려왔다. 그의 작업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자연의 이치와 삶, 예술에 관한 깊은 고민을 담고 있다. 특히 현대적인 감각으로 한국화를 재해석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김선두, 낮별-장닭
김선두의 '낮별-장닭'. /학고재
"어떻게 하면 한국화가 현대화로서 기능할까 항상 고민하며 새로운 실험을 많이 해왔습니다. 저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야기하는데 하나는 낡은 방식으로 새롭게 이야기하기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우리만의 미감을 새로운 미디어로 풀어가는 것이지요. 이번 전시에는 첫 번째 방식이 주가 된 작품들을 선보였네요."

중앙대 한국화학과 명예교수인 작가는 김훈 '남한산성' 표지와 임권택 감독 영화 '취화선'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장승업 그림 대역을 맡았다. 학고재에서 7번째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총 36점을 소개한다. 8월 17일까지.

김선두 전시 전경
김선두 개인전 '푸르른 날' 전시 전경. /학고재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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